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의 천주교 박해 (문단 편집) ==== 전후관계 ==== [[황사영 백서 사건]]을 들어서 "외세를 부르려 해서 박해했다"고 하는 것은 전후관계과 책임 소재를 뒤집은 것으로, 실상은 "박해 당해서 외세를 부르려 한 것"이다. 곧, 조정에서 [[한국 124위 순교복자|윤지충 야고보와 권상연 야고보]] 등을 박해하자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난 것이며, 그 시작은 분명하게 특정 종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황사영의 어리석음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한들, 백서 사건의 본질은 "박해 받던 신자가 참다 못해 외세를 부른 것"이며, 그 이전엔 조정도 조선 가톨릭 신자들도 외국 군대를 가톨릭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백서 사건의 당사자인 [[황사영]]부터가 외국 [[가톨릭]]을 매우 피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청나라]]에선 천주교가 마음껏 허용된다',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면 천주교 허용을 조선에 강요할 것이다' 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서양 군대에 대해서도 백서에선 구체적으로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서양'으로만 적고 있을 뿐이다.] 비유컨대, '''아비의 빠따질에 시달리던 아이가 참다 못해서 옆집 양아치 아저씨를 끌어들이려 했다면, 양아치를 순진하게 믿은 아이도 문제지만, 문제의 시작은 당연히 아비의 빠따질에 있는 것이다.''' 이건 황사영의 어리석음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결코 희석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상황에서 '''그 아이는 양아치를 부를 아이였으니 빠따질도 정당했다'''고 하는 건, 전후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다만 전후관계에서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황사영의 발상은 매우 지나쳤다. 황사영의 행동이 단순히 타국에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를 탄압하는데 좀 도와주세요' 라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그래도 이정도는 할만한 수준이겠지만, 그리고 일단 황사영도 무력을 먼저 쓰는게 아니라 교황이 중국(청) 황제에게 부탁을 드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하자는 것이었고 조선왕을 황제의 부마로 삼자는 등 그나마 덜 나쁜 방법도 제시하였긴 하다. 허나 조선판 [[입성책동]]이나 무력시위는 선을 너무 넘었다. 그래도 황사영이 아무것도 배운 바 없는 무지한 사람이라면 못배워서 판단력이 나쁘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 황사영은 정약용 집안과도 얽혀 있는 집안, 그러니까 양반 집안이다. 이런 집안이 못배웠을 리는 없고 실제로 진사시에도 합격했으니 황사영은 결코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국을 타국에 병합해달라고 하고 무력시위를 요청한 것에 대하여 그정도쯤 배운 사람이라면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생길 후폭풍에 대해서 생각을 못해봤다면 실로 경악스러울 정도의 처참한 판단력을 가진 것이고[* 이는 황사영이 천주교와 중국에 대하여 가진 환상과는 별개다. 즉 황사영의 환상대로 중국이 천주교에 매우 호의적인 국가이고 '일단' 서양이 선의로 황사영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그 이후의 후폭풍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얘기.] 생각을 해봤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든 백성이 어떻게 되든 그저 나와 내가 믿는 천주교만 중요하다는 광신도, 이기주의자, 매국노라는 소리이다. 거기다 역사상 중국과의 치정관계나 서양세력에 대해선 아는것도 없다는걸 감안하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인데 황사영은 너무 지나치게 신중하지 못했다. 황사영이 서양은 천주교를 믿고 또 주문모 같은 모범적인 신부를 보고 환상을 가졌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게 맞다면 황사영은 그걸로도 욕먹어 마땅하다. 천주교인이라고 다 좋은 사람이 있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이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판단한 것과 같은 셈이다. 하다못해 천주교인들은 자기가 직접 만나보기라도 했지 서양에 대해선 그저 천주교를 믿는다 정도의 정보 외엔 없었을 것이다. 그것 외에 접할 정보가 거의 없기도 하고. 결국 황사영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사실 이것도 이를 계기로 청이나 서양의 내정간섭 등이 일어날 수 있으니 좋은 일은 아니다.) 그게 자국을 팔아먹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도를 넘었다. 오죽하면 뮈텔이나 아래에 나오는 달레 신부가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겠는가? 무려 성직자씩이나 되는 자기들 눈에 봐도 너무 나갔다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달레 신부 소속이 파리 외방전교회, 그러니까 박해 때마다 죽어나간 천주교 서양신부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과 같은 소속 사람인데도 이렇다. 물론 그 소속에는 리델[* 로즈 제독에게 함대 출격을 요청해 [[병인양요]]가 일어나게 만들었다.]이나 페롱[* 오페르트와 더불어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주범이다.] 같은 막장도 있긴 하지만...] 또한 황사영이 국가와 교회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본 것은 문제가 맞지만, 국가와 교회를 양자택일하도록 상황을 몰고 간 것은 분명하게 조정이었다. 그마저도 황사영 이후 [[가톨릭/대한민국|조선 천주교회]]는 조선인이든 외국인 선교사이든, "아비가 빠따질을 하더라도 일단 참고 견디자"라는 마인드로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때까지 견뎌야 했다. > “지나친 상상에서 나온 유치한 계획이며, 저 시대에 있어서의 한 몽상(夢想)이었음이 분명하다.” >---- >-[[파리 외방전교회]] 샤를르 달레 신부(Claude Charles Dallet: 1829-1878). [[황사영 백서 사건]]에 대한 평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